다들 봄을 잘 누리고 있어?
오늘은 고난주간을 맞이하여 예수님의 고난이 예언된 시편22편을 나누려고 해!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시 22:1)
제구시쯤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질러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마 27:46)
인간에게는 근원적으로 버려짐의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 같아! 어린 시절 길을 잃어버린 적 있어? 어머니의 손을 꼭 잡는 이유는 부모님의 보호 아래서 벗어나는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기인한 걸 거야.
예수님과 다윗은 모두 성부 하나님께 자신이 버려짐을 두려워하고 있어. 고난의 한가운데서 홀로 남겨지는 것처럼 치명적인 것은 없지. 하나님은 다윗의 인생에 함께 하셨지만 다윗의 고난 속에 침묵을 행하셨어. 예수님에게도 아버지와 영원할 것 같던 충만한 교제가 중단되고 인간에게 쏟아질 진노를 자신이 직접 감당하는 시간이 있었지.
그리스도인은 고통받는 존재야
요즘엔 싫어하는 발언일 수 있지만 사실이야. 타락한 세상은 고통 투성이야. 하나님은 우리를 바로 완성하지 않으셔. 대신 고통의 한가운데 그 시간을 살게 하시지. 예수님이 당하신 십자가의 시간들처럼… 다윗이 울부짖던 고난의 그 시간처럼…
우리도 그렇지? 인생에 뭐하나 쉬운 게 없어. 구원받는다는 것은 고통을 면제받는다는 의미가 아니거든. 그리스도인이 된다고 세상 속 고통이 우릴 피해 가지 않아. 정신적 육체적 질병, 사람과의 갈등과 미움, 범죄 안에서 우린 결코 자유롭지 않아. 로마서의 “곤고한 자(7:24)”가 바로 우리라고ㅠㅠ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비방 거리요 백성의 조롱 거리니 나를 보는 자는 다 나를 비웃으며 입술을 비쭉거리고 머리를 흔들며 말하되그가 여호와께 의탁하니 구원하실 걸, 그를 기뻐하시니 건지실 걸 하나이다 (시22:6-8)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시22:16)
백성은 서서 구경하는데 관리들은 비웃어 이르되 저가 남을 구원하였으니 만일 하나님이 택하신 자 그리스도이면 자신도 구원할지어다 하고 (눅23:35)
군인들이 서로 말하되 이것을 찢지 말고 누가 얻나 제비 뽑자 하니 이는 성경에 그들이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제비 뽑나이다 한 것을 응하게 하려 함이러라 군인들은 이런 일을 하고 (요19:24)
반전의 반전, 조롱과 수치…
다윗과 예수님은 모두 왕이었지만 조롱과 수치의 한가운데로 나아가야 했어. 조롱 가운데 성부 하나님은 그들을 바로 구출하지 않으셨어. 반전 따윈 없었지. 퍼부어지는 조롱을 그대로 듣는 것이 그들에게 허락된 시간이었어.
기독교는 반전의 종교야. 우리의 약함이 하나님의 강함으로 드러나는 것이라 그렇지. 우린 세상의 방식으로 파워게임을 하지 않아. 우린 우리의 능력을 과시하면서 우리의 존재를 증명하지 않아. 우리가 그분으로 인해 듣는 수치와 조롱은 바로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영광으로 환원되는 것! 이것이 진짜 반전이지.
예수님은 벗겨짐을 당하셨어. 모든 옷이 남김없이 말이야. 인간이 타락하며 가진 첫 번째 수치심을 알고 있지? 그것은 벗었다는 수치심이야. 아담과 하와가 죄를 범하였을 때 하나님은 그들의 수치를 옷으로 가려주시지. 그래, 우리가 가진 수치심과 정죄감은 그리스도의 헐벗음으로 회복되었던 거야.
그렇기에 다윗과 예수님은 그 고난의 시간을 조용히 보낼 수 밖에 없었어…
하지만 기독교에 새드엔딩은 없지!
겸손한 자는 먹고 배부를 것이며 여호와를 찾는 자는 그를 찬송할 것이라 너희 마음은 영원히 살지어다 땅의 모든 끝이 여호와를 기억하고 돌아오며 모든 나라의 모든 족속이 주의 앞에 예배하리 나라는 여호와의 것이요 여호와는 모든 나라의 주재심이로다 (시22:26-28)
큰 음성으로 이르되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은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 하더라 (계5:12)
놀라운 것은 이 고난과 수치가 현재의 우리에게 소망이 된다는 거야. 혼란스러운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이 당하신 고난은 우리의 소망이 끊어지지 않게 하는 것은 물론 오히려 더 진하게 만들고 있어. 하나님의 나라가 시작되었어.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고난은 승리가 되었고 그것은 하나님 나라가 부풀어지는 시작이었어. 하나님은 생명을 이루셨어. 그는 작은 씨앗으로 땅에 묻혔지만 결국 생명의 꽃으로 피어나셨어. 우리도 묻힐 수밖에 없는 썩은 씨앗에서 아름다운 꽃으로 다시 자라나고 있어.
우리의 삶에 고통만 있다고 생각하는 건 아니지?? 오늘 우리가 겪는 인생의 씨름은 그분의 다시 오심으로 회복될 하나님 나라의 한 걸음이 되었어. 그렇기 때문에 우린 넉넉하게 소망을 선포할 수 있어. 세상은 고통 속에 신음하고 있어. 우리밖에 없어. 과학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고 그렇다고 심리학도 아니야. 세상에 소망을 줄 수 있는 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뿐이야. 우린 그 소망의 증인들이고 말이야. 그렇기에 고통의 오늘을 사는 우린 범사에 감사할 수밖에 없어.
힘 빠지는 요즘이니? 삶이 힘들거나 공허해? 소망이신 주님을 만나길 기도할게! 이 시편의 저자는 다윗이야. 시편은 성경이고 성경은 성령님의 영감으로 쓰인 것이야. 다윗은 혼자인 것처럼 울부짖었지만 사실 성령님이 그와 함께 하셨어. 그의 고통의 고백이 그리스도의 삶을 예언한 것처럼, 우리가 오늘 세상에 선포하는 하나님 나라의 소망 고백은 미래의 그림이 될 거야!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닦아 주시니 다시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계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