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양하며 경배해 귀하신 만왕의 왕 (모든 주의 주 모든 왕의 왕 전능하신 분 만물의 주인) 주님 앞에 엎드려 사랑하며 높이리 (주 임마누엘 위대하신 분 어린 양 되신 만왕의 왕) 찬양하며 경배해 귀하시 만왕의 왕 (살아계신 주 구원의 은혜 영원히 다스릴 창조의 근원자) 주님 앞에 엎드려 사랑하며 높이리 (주는 알파 오메가 처음과 나중 나의 구원 메시야 친구 되신 분) 나의 일생을 주만 위해 살리라
나는 믿습니다.
나는 영원한 삶을 믿습니다.
나는 성령으로 잉태되심을 믿습니다.
나는 주님의 거룩한 교회를 믿습니다.
나는 성도의 교제를 믿습니다.
나는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을 믿습니다.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습니다.
영원히 높임을 받으시기 합당하신 주님
We sing Hallelujah.
디모데후서는
사도 바울이 자신의 모든 사역을 마치고
그의 마지막 순간에 불빛도 없는 감옥에서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에게 쓴 편지입니다.
내가 밤낮 간구하는 가운데 쉬지 않고
너를 생각하여 청결한 양심으로 조상적부터 섬겨 오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네 눈물을 생각하여 너 보기를 원함은 내 기쁨이 가득하게 하려 함이니
_ 디모데후서 1장 3-4절
사도바울이 디모데를 에베소에 두고 올 때 아마도 디모데가 바울 앞에서 울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눈물을 보았던 바울은
핍박과 박해가 어떻게 퍼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얼마나 디모데를 걱정했을까요.
항상 그의 마음 속에 눈물을 흘리는 디모데가 있던 것 같습니다.
우리 형제 디모데가 놓인 것을 너희가 알라 그가 속히 오면 내가 그와 함께 가서 너희를 보리라
_ 히브리서 13장 23절
그런 그 때, 디모데가 잠시 갇혔다가 풀렸던 것 같습니다.
이 일로 위축된 디모데에게 사도 바울이 자신의 마지막 마음을 전합니다.
그러므로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 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
_ 디모데후서 1장 8절
사랑하는 아들 디모데야, 네가 고난을 받은 것은 '복음을 위해서' 였다. 너의 죄 때문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기 때문이니라. 우리가 믿는 예수님 또한 일생을 복음을 위해 살다 처참히 죽임을 당하셨다. 우리가 고난을 받는 이유는 우리가 복음을 '증언'했기 때문이리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먼저 충성스럽게 증인으로 사셨고
그 바톤이 사도 바울에게 이어졌으며 그가 달려갈 길을 다 간 후에
그 바톤을 다시 디모데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이 후에 충성된 증인으로 살다가 순교 당했고
마침내 그 바톤이 우리에게 왔습니다.
누가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바톤을 받으시겠습니까.
누가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거룩함을 지키며 순전하게 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불러 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행실을 따라 하신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의 계획과 은혜를 따라 하신 것입니다.
이 은혜는 영원 전에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_ 디모데후서 1장 9절 (표준새번역)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즉흥적으로 선택하신 것이 아니라, 아주 오랜 심사숙고 끝에 구원하신 것입니다.
우리의 구원의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우리 스스로 아무런 결단이나 심지어 포기도 할 수 없습니다.
내 의지가 아니라 내 안에 계신 성령 하나님의 능력이
사망 권세를 끊으신 놀라운 능력이
이미 역사하기 시작하셨다고 성경에서 일관적으로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면서도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는 분을 잘 알고 있고,
또 내가 맡은 것을 그분이 그 날까지 지켜 주실 수 있음을 확신합니다.
_ 디모데후서 1장 12절 (표준새번역)
내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안다면 그의 아름다움을 알고 그의 존귀함을 안다면 그의 영광스러움을 안다면 그의 신실하심, 성실하심, 위대하심을 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 나의 삶을 맡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을 것입니다.
너는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병사로 나와 함께 고난을 받으라.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 생활에 얽매이는 자가 하나도 없나니
이는 병사로 모집한 자를 기쁘게 하려 함이라.
경기하는 자가 법대로 경기하지 아니하면 승리자의 관을 얻지 못할 것이며
수고하는 농부가 곡식을 먼저 받는 것이 마땅하니라
_ 디모데후서 2장 3-6절
우리는 극한의 고난을 당할 때 취해야 하는 태도가 있습니다.
1. 병사
병사로 복무하는 자는 ‘자기의 생활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병사의 특징은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지 않는 것입니다.
부르신 이의 뜻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2. 경기하는 자
경기하는 자의 가장 중요한 것은 ‘규칙을 지키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고 있다고 기준을 낮춰 타협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기준의 거룩함과 순전함을 지켜야 합니다.
경기의 끝을 내는 심판이 휘쓸을 불기 전까지 경기가 끝나지 않는 것처럼,
우리의 부르심의 끝을 말씀 하시는 하나님이 휘쓸을 불기 전까지 우리는 달려야 합니다.
3. 농부
농부에게 가장 중요한 태도는 ‘성실함’입니다.
농작에 일이 생겼다면 쉬고 싶더라도 나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_ 디모데후서 4장 7-8절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 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그들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_ 디모데후서 4장 16절
의의 면류관 = 헬라어, 스테파노스 = ‘스데반’의 헬라어 이름
바울이 마지막 순간에 자신을 위해 예비된 ‘관’은 스데반 집사의 헬라어 이름입니다.
그리고 그가 말한 16절의 말씀은
그가 죽인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기도와 같습니다.
사도 바울의 마음 한 켠에는 늘 스데반 집사의 마지막 순간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이 누군가의 기도 때문 일지도 모릅니다.
이제 우리 차례가 왔습니다.
우리가 이제 누군가의 스데반이 되어야 할 때입니다.
아직 경기는 끝내는 휘슬이 울리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우리의 선한 싸움을 싸우고 우리의 달려갈 길을 걸어갑시다. 아니 달려갑시다.
하나님, 내가 내 삶이나 세상의 기준을 삼아 살지 않고 주님 뜻대로 살고 싶습니다. 어떤 시련과 고난 가운데서도 나의 주, 나의 예수님을 따르기로 결정합니다. 오 나의 주님, 내가 온 힘을 다해 주를 따라갑니다.
NO TURNING BACK.
I WILL FOLLOW YOU, JES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