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켄지,
오랜만이군요. 보고 싶었어요.
다음 주말에 오두막에 갈 예정이니까 같이 있고 싶으면
찾아와요.
-파파
막내딸 미시의 납치와 죽음 이후 ‘거대한 슬픔’ 속에서 헤어나오지 못했던 매켄지의 삶에 짧은 쪽지 한장이 전달됩니다. 윌리엄 폴 영의 장편 소설인 ‘오두막’ 속에서 처음으로 주인공 매켄지의 삶에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시작한 하나님의 이야기이죠. 파파로 표현되는 하나님이 매켄지를 초청한 곳은 다름아닌 ‘오두막’, 자신의 모든 것을 주고도 아깝지 않은 막내딸 미시의 마지막 흔적이 남겨져 있던 바로 그 공간입니다. 그 처절하고 처참한 기억의 오두막, 거대한 슬픔의 근원이 된 오두막에서 파파를 만나게 된 매켄지에게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요?
서울 UDTS에는 특별한 기간이 있습니다. 어느 시기보다 가장 나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죠. 또한 어느때보다 나에게 집중되긴 하지만 그 어느때보다 하나님 그분께 집중되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내적치유. 내 자신을 돌아보며, 마음 깊숙이 남아있는 아픔들과 상처들을 빛 가운데로 드러내는 시간입니다. 물론 우리의 상처를 다루어야만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을 알아갈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의 상처는 많은 경우 나와 하나님, 또 나와 사람들 사이에서 ‘오해’를 만들어냅니다.
오두막에 도착한 매켄지는 이렇게 외칩니다.
당신은 어디 계신가요? 여기에서 날 만나고 싶어하신 줄 알았는데요. 하나님, 저 여기 있습니다. 당신은요? 어디에도 안계시는군요!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할 때 한 번도 옆에 계시지 않았죠.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도, 미시를 잃었을 때도요. 지금도 없군요. 정말 대단하신 ‘파파’입니다!
“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요한일서 4:6-7]
“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요한일서의 말씀에는 하나님 그분이 사랑 자체라고 이야기합니다. 하나님의 본질은 사랑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되었죠. 하지만 하나님께 토로하는 매켄지의 외침은 어떤가요? 하나님은 부재하시는 분, 돌보지 않으시는 분, 무자비하신 분으로 매켄지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지 않나요?
사람은 경험적인 존재입니다. 우리가 살아오면서 만들어내는 경험의 틀은 매우 중요합니다. 사랑을 기반으로 창조된 우리가 범죄로 하나님과의 사랑의 관계를 스스로 단절한 이후, 우린 예측할 수 없는 거절이 충만한 세상에서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거절’은 사랑을 정상적으로 주고받아야 하는 관계에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거절의 틀에서 때론 우린 사랑받지 못하고, 사랑을 주지 못하며 그렇게 상처를 받고 상처를 입힙니다.
문제는 거절로 인하여 우리 마음에 아픔이 찾아올 때 이 아픔을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할 때 발생합니다. 내면안에 남겨진 아픔은 상한 감정, 상한 마음, 쓴뿌리로 남게 되고, 이 쓴뿌리는 왜곡된 인격, 왜곡된 캐릭터, 왜곡된 성격을 형성합니다. 그리고 마치 이 모습이 나인것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매켄지가 영원한 동반자라고 ‘거대한 슬픔’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이죠. 딸을 잃은 상실감, 딸을 구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무기력함과 후회는 매일 그의 삶을 지배하고 다스렸습니다.
우리의 상처와 고통은 심지어 우리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다는 사실조차도 잊어버리게 만듭니다. 심지어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도 말이죠. 특별히 사랑받는다고 느껴본적이 없던 주인공 맥에게 파파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당신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어요. 그러니 당신이 사랑받지 않는 것처럼 산다면 그게 바로 당신 삶을 제한하는 거예요. … 사랑받지 못하고 사는 것은 새의 날개를 잘라서 날아다니는 능력을 제거하는 것과 똑같아요. 나는 당신이 그러기를 원하지 않아요. … 고통은 우리의 날개를 잘라내고 날 수 있는 능력을 빼앗아버려요, 그리고 이 문제를 오랫동안 해결하지 못하면 당신은 자신이 날기 위해 창조되었다는 사실마저 잊을걸요.
내적 치유는 결코 과거의 일에만 집착하지 않습니다. 그저 과거의 아픔을 해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랑받기에 합당하도록 지어진 우리의 원래의 정체성을 회복하는 시간입니다. 또한 거절을 예측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거절을 통제하는 방법을 배우는게 아니라, 거절에 대한 건강한 반응을 선택하는 것을 배우는 시간입니다.
우선 내 삶에 깊이 뿌리박혀있는 깊은 거절감과 수치심을 다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그 이후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상처를 해결하는 데에서 더 나아가 앞으로의 삶에서 언제든지 만나게 될 또 다른 거절의 상황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럴 때 우린 이제 상처에 대한 건강한 반응을 선택하기로 결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입니다. 결국 내적치유는 과거의 삶에만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마주치게 될 미래의 일과, 상처를 마주하게 될 오늘을 위한 시간입니다.
그렇다면 내적치유를 위해 어떤 과정을 보내게 될까요? 2가지의 키워드를 뽑아볼 수 있습니다.
정직 + 용서
내적 치유는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아픔을 내어드림으로 시작됩니다. 우리의 상한 감정과 마음, 모든 괴로움들을 표현하고 그 아픔가운데 우리를 위로하시는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 때 우리가 취해야할 가장 중요한 태도는 바로 ‘정직’ 입니다. 파파의 오두막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서 그 상처를 다루시기 전까지 말입니다.
“전부 털어내 봐.” 그는 파파의 속삭임을 들었고, 결국 모든 것을 털어낼 수 있었다. 눈물이 쏟아져 내려서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 미시에 대한 추억이 홍수처럼 밀려왔다. … 그는 큰 소리로 울며 그동안의 모든 어두움과 그리움, 상실감을 토해냈고, 결국은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그는 눈을 감은 채 앞뒤로 몸을 흔들며 탄원했다. “파파, 도와주세요, 도와줘요!”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쉽게 덮어버릴 수 있습니다. 특히 지금의 내가 갖고 있는 가치관이나 사고로 과거의 일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정직이란 그렇게 상처의 순간의 내가 아닌 지금의 나의 반응으로 과거의 일을 대하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정직이란 주님과 함께 주님이 가시는 만큼만 가는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만나주신다는 그 믿음을 가지고 그 상처와 아픔, 고통으로 돌아가 충분히 아파하고 건강하게 아픔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언어로, 눈물로 이 아픔들을 표현하며 주님께서 부어주시는 새로운 차원의 위로를 경험하는 것, 이것이 내적치유입니다.(**언어적 표현은 시편 142편을 읽어보기를 권합니다.) 이 과정을 보낼 때 잊어서는 안되는 사실은 아픔을 대할 때 억지로, 결정하고 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하나님께서 회복을 위해 일하기 시작하시는 흐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직을 이야기할 때 ‘회복’이 감정적으로 치우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내적치유는 결코 감정적으로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정직한 반응으로 주님이 주시는 위로를 경험하며 우리 안에 여유가 생길 때 우리는 우리에게 상처를 준 대상을 ‘용서’하기로 결정해야 합니다. 그 대상이 자신일 수도 있겠죠. 중요한 것은 용서는 감정을 포함한 의지적인 선택이라는 것입니다.
용서란 너를 지배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야. 또한 완전히 터놓고 사랑할 수 있는 너의 능력과 기쁨을 파괴하는 것으로부터 너 자신을 해방시키는 일이지. … 어떤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그 사람을 제대로 사랑한다는 의미야. … 첫날과 두번째 날에는 용서한다고 백 번을 선언해야 할지도 몰라. 셋째 날부터는 횟수가 점점 줄어들고 언젠가는 완전히 용서했다고 깨닫게 될 거야. 또 그 사람의 온전함을 위해 기도 드릴 수 있을 거야.
용서는 이벤트가 아니라 삶이 되어야 합니다. 삶의 일부가 되어야만 죄로 인해 깨어진 세상에서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용서는 과정입니다. 한번에 끝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또한 용서는 화해를 전제로 하지 않습니다. 화해는 쌍방의 변화가 필요한 일입니다. 상대방 역시 돌이키는게 필요하죠. 용서한다고 해서 상처를 준 사람을 우리가 신뢰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마침내 그들에게도 변화가 일어나고 그들이 고백하고 회개한다면, 용서라는 길을 통해서 신뢰의 길이 서로에게 열릴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용서의 삶을 모델로 보여주신 분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만든 피조물로부터 거절당하셨습니다. 그분은 거절을 예측하고 통제하실 수 있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하지만 주님은 거절을 허락하시고 받으시고 십자가 위에서 용서를 선언하셨습니다.
결국 나 자신에게 초점이 맞추어지는 것 같은 이 내적치유의 기간 역시 용서가 필요한 이 땅의 영혼들에게 향하게 됩니다. 길을 잃고 하나님 아버지를 떠난 수많은 영혼들에게 필요한 그분의 용서를 선언하고 선포할 자들로 세워지기 위해서 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상처입은 치유자’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삶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서울 UDTS 연구팀의 시원 간단한 책소개
진정한 나를 찾아가는 여행
이도원 지음
예수전도단 출판
내 속을 후벼팔까 민감한 우리 마음에 내적치유의 핵심적 내용을 그래도 너그러운 맘으로 납득하도록 써준 책. 그리고 치유에서 나아가 진정한 하나님의 자녀된 신분이 어떠한 것인가 회복에 대한 부분까지 맛볼 수 있는 점에서 내적 치유 전반을 비교적 가볍게 이해하는 도서로 좋아요 :)
오두막
윌리엄 폴 영 지음 / 한은경 옮김
세계사 출판
막내 딸을 잃은 거대한 슬픔을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님을 오두막에서 만나며 치유해가는 매켄지의 이야기. 소설처럼 가볍게 읽기를 권하지만 책 가득히 담겨있는 따뜻한 그분의 마음과 진리는 결코 이 책의 한장 한장을 쉽게 넘기게 하지 못하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