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인도 : 정소희 간사 (순천향대)
찬양인도 : 최정도 간사
메시지 : 이한일 간사(천안아산 대학사역리더)
예배를 준비하면서 주신 마음
이러므로 우리에게 구름 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이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 버리고 인내로써 우리 앞에 당한 경주를 하며,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를 바라보자 그는 그 앞에 있는 기쁨을 위하여 십자가를 참으사 부끄러움을 개의치 아니하시더니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셨느니라. 너희가 피곤하여 낙심하지 않기 위하여 죄인들이 이같이 자기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이를 생각하라. (히 12:1-3)
우리는 참 피곤합니다. 참 힘든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 우리가 만나고 경험하고 싸워야하는 세상은 너무 복잡하고 바쁩니다. 세상이 복잡하니 그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 역시 복잡하고 바쁠 수 밖에 없겠지요. 복잡하고 바쁘기 때문에 우리에게 주어지는 일도 많고 책임져야 할 것 같은 상황도 많습니다. 그것들은 우리를 올가매기도 하고 우리를 가두기도 하지요. 우리의 발이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쉽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 (마 11:28-30)
세상이 주는 멍에는 우리를 누르고 힘들게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비젼이라 하지만 그 아래서 눌려 벅차하고 힘들어합니다. 주님의 멍에는 가볍다 했습니다. 그러다면 우리를 누르고 있는 그 멍에는 주님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비젼이라 품었던 것들, 하지만 그것은 나를 묶어 주님께로 오히려 가지 못하게 합니다. 우리는 주께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의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고 우리에게 당한 경주를 감당해 내는 것입니다. 믿음의 주님이시며, 우리를 온전케하시는 예수님을 바라보면서 말입니다.
힘드십니까? 낙심되십니까? 예수님을 바라봅시다. 그리고 주께로 달려나갑시다. 내 모든 것을 그분께 맡겨드릴 때 우린 비로소 가벼울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예배에서 그런 우리 전부를 주께로 내어 드리며 그의 가벼운 멍에를 취하는 시간이 되어지길 기대합니다.
콘티
- With all I am(주님 손에 맡겨드리리) E
- That’s what we came here for (우리 주 안에서 노래하며) Bb
- Nothing is impossible(불가능 가능케 해) Bb
- Take it all(받아 주소서) Bb
- Forever reign(좋으신 하나님) Bb
- I Have Decided Bb
- Everything(나의 모든것) Bb
- I Have Decided(repraise) Bb
적용 – 주님 곁으로/예수 닮기를/주의 은혜 아침 해 같이/주의 아름다움은 말로다
/나의 소망은 주 경외함/형제의 모습속에
헌금 – Yahweh
메시지 – 이한일 간사(천안아산 대학사역 리더)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 하는 형제들아 견고하며 흔들리지 말며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는 줄을 앎이니라 (고린도전서 15:55-58)
오늘 본문은 사도바울이 고린도교회에게 하고 싶었던 중요한 멘트입니다.
주님이 금방 다시 오실 거 같은데 자꾸 지연되고 있는 상황 속에 교회에 혼란이 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이 정리하기 시작했죠. 주님이 언제 오신다는 것에 미혹되어 귀 기울이지 말고 흔들리지 말고 정도를 지켜라. 하나님이 말씀하신 그 정도를 지켜라. 주님이 아신다. 흔들리지 말고 더 살아내라고 도전하는 겁니다. 여러분, 우리는 제대로 믿던지, 그냥 세상 사람들처럼 살던지 영적노선을 정해야 합니다. 이왕 믿을 거면 제대로 알고 하나님을 따라갑시다.
천안아산대학사역을 이끌어온 원동력은 과격함이었습니다. 과격함의 근본은 우리 안에 우리 삶의 현장에서 승리의 체험에 있습니다. 내 삶속에서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내가 승리를 체험하는 기쁨이 오게 될 때 표현하게 되는 거죠.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이 과격함을 가지고 있어요. 하지만 그렇게 못살아냅니다. 승리체험이 없거든요. 교회만 나오면 썩어버려요. 이기적이고, 자기만 알며, 아무것도 섬기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포기도 없죠.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더 위축되어 과격하게 살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합니다. 기본적으로 질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세상 속에 나아가요. 세상 속에서 또 각 나라 족속에서 영향력이 없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고 있어요.
여러분의 거처에서 승리를 체험해야 합니다. 제대로 살아가고 있을지라도 여러분의 거처에서 질책 받을 수 있어요. 그들이 우리를 싫어할 수도 있죠. 그럴 때 하나님의 성품을 장착해서 그들을 섬기고 주께 하듯 대하기 시작하는 겁니다. 왕 노릇 하는 게 아닌 하나님의 성품으로 우리가 성화되어야 하는 겁니다. 우리가 그들보다 낮은 자리에서 그들을 섬기면서 나아가지 않는다면 우리의 과격함은 없어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힘들어 한다는 직장생활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으로 밑바닥부터 섬기는겁니다. 직장 안에서 뭔가 예배하려고 하지 마세요. 묵상하고 예배하고 이런 것들은 우리의 시간을 쪼개서 하는겁니다. 승리를 체험하지 못하는 기독교인들에게서 어떻게 하나님의 성품이 흘러나올 수가 있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친구 혹은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성품을 그들 가운데 흘려주고 있습니까? 그 승리를 체험하면 예배의 질이 달라집니다. 과격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에 관심이 많으십니까? 어떤 것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돌리고 싶으십니까? 그 하나님으로부터 음성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면 이 과격함은 우리의 것이 될 수가 없어요.
여러분에게 도전하고 싶습니다.
1. 삶에서 승리체험을 통해 과격해지기 시작하는 여러분이 되십시오.
그때부터 과격해집니다. ‘하나님을 만난다.’라는 것은 채워짐입니다. 계속해서 채워짐으로 인해 생기가 도는 것이죠. 사랑하는 착한 와웸 여러분 생기를 찾으십시오. 순종해야 생기가 뭔지를 알게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실 수 있게 정확한 노선을 결정합시다.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짓지 말라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자가 있기로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기 위하여 말하노라 (고전 15:34)
저들은 깨어있지도 않아요. 그러니 의를 행하지 못하고 죄를 짓고 있죠. 사도바울은 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겁니다. “다 썩었다. 이 교회여. 헛짓 하지 말고 깨어 의를 행하고 죄를 청산해라.” 교회에 이상한 사건이 일어나기 시작하죠. 죄를 감추기 시작합니다. 이 상황을 좌시할 수 없던 사도바울은 본문과 같이 언급한 겁니다. 이게 바로 과격함의 또 한 모델입니다. 아니라고 하십시오. 죄 짓고 있는 누군가에 대해선 죄라고 얘기하세요.
그리고 내가 죄를 지었으면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라고 자복하세요. 그래야 우리가 생기가 돋습니다. 생기는 자연스럽게 돋는 게 아니예요. 자복해야 생기가 일어나요. 그리스도인만이 가질 수 있는 그 생기를 우리가 가질 수 있는거예요. 그게 과격인겁니다.
걱정되는 것은 ‘이 세대가 영적좀비가 되지는 않을까?’ 주님이 계속 깨우시는데 계속 일어나지는 않고.. 만족함이 없어요. 주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는 것이 없는 세대가 왔어요. 하나님 외에 너무 좋은 게 많죠.. 사람들은 계속 ‘가족됨’, ‘따뜻함’을 추구해요. 그런데 하나님의 키워드가 ‘가족됨’, ‘따뜻함’이 아니에요. 그건 과격함으로 우리 안에 함께 가는 은혜가 있을 때 오게 되는, 자연적으로 풀어지는 하나님의 성품이 따뜻함인 거예요. 무조건 따뜻함을 외치는 게 아니라, 과격함으로 충성과 헌신과 위탁이 일어날 때, 하나님 성품이 풀어지는 공동체 안에 따뜻함이 계속적으로 형성되는 겁니다. 억지로 따뜻해지려고 해서 따뜻해지는 것이 아니예요.
사랑하는 여러분, 저는 여러분이 과격한 세대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교회를 바꾸세요. 더 겸손하게 섬기는 겁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품대로 살아가는 그 사람이 과격한 사람인거예요. 그 사람을 통해 은혜의 통로, 하나님의 성품,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나오기 때문에 누군가는 그 행위를 통해 바뀌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우리는 이런 거에는 감흥이 없죠. 큰일을 원해요. 내 이름이 더 크게 퍼지길 바라죠. 그건 과격이 아닙니다. 우리의 이름과 행적은 숨기고, 주 예수님만 높아지시도록, 작은것이라도 주 예수님만 높아지도록 섬겨야합니다.
2. 중보기도를 일으키십시오.
기도를 가르쳐야 합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제일 잘 안되는 게 중보기도일거라 생각합니다. 기도하십시오. 이때 놀라운 흐름을 발견하게 되고, 공동체가 살아납니다. 기도하는 그 몇 명을 통해 공동체는 살아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이 세대에게 주는 과격입니다.
3. 회복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정을 잃어버리면 모든 헌신이 쓰레기가 되요. 버거워지죠. 이것이 사단이 정확하게 노리는 노림수입니다. 하나님께로부터 온 열정을 낼 수 없기 때문에 계속 후퇴하게 만들어요. 하나님과의 그 열정가운데 다시 들어갈 수 있도록 다시 기도하고 엎드리며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애씁시다. 하나님의 열정을 사야합니다. 하나님이 내 기쁨이 되어야해요.
영적좀비에서 탈피합시다. 이 세대에 휩쓸리지 맙시다. 무감각한 세대가 되면 안되요. 우리는 이것을 위해 영적전쟁 해야합니다. 혹시 내 몸에 좀비의 흔적이 있다면. 자꾸 반응하고 싶지 않다는 흔적이 있다면 기도합시다. 주님 찢어주십시오.
죄성과 하나님의 진리는 같이 공존할 수가 없어요. 여러분의 비전을 이루고 싶으십니까? 근데 주님이 말씀하시는 것은 우리의 죄성이에요. ‘주님 저 이거 채워주세요.’, ‘왜 말씀하지 않으시죠?’ 하나님께선 ‘네 죄를 내 앞에 꺼내 놓아라. 내가 그것을 찢고 정결케 할거다.’ 라고 말씀하실겁니다. 이 과정 속으로 들어가야 기도제목이 응답됩니다. 응답이 내가 원하는 대로 되는 것이 응답이 아니라 하나님이 ‘이렇게 하겠다’ 라고 하실 때 그 응답을 받아들이는 것, 그게 믿음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과격함은 축복입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풀어주시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께 안정감을 두면 하나님이 어떤 것을 주셔도 만족감이 생겨요. 하나님 앞에 드릴 준비가 되어있어야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 영광받으실 겁니다. 하나님의 보상은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습니다. 지금뿐만 아니라 평생에 걸쳐 하나님이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드리는 연습하세요. 가장 소중한 것을 주님께 먼저 드리는 연습을 하기 시작했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은 과격하게 되는 것입니다. 드릴 줄 모르는 인생은 끝까지 못 드리게 될거예요.
과격함의 본질은 하나님의 성품이에요. 하나님의 성품대로 사는 연습을 해봐야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체험하는 것을 통해 승리를 체험하게 하세요. 하나님이 나에게 메시지를 날려주세요. ‘수고했다 나의 충성된 종아 네가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나를 의지하였구나 네 복이 크도다.’ 아멘. 우리 하나님 이걸 바라시는거예요. 이런 사람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이 되고, 하나님이 그 사람을 지키고 사용하시는 거예요. 여러분 이러한 와웨머가 되시기를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