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인도 : 김사랑 간사 (남서울대학교)
찬양인도 : 최정도 간사
메시지 : 나현경 선교사(몽골)
예배를 준비하면서 주신 마음
셋도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 4:26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다시 한번 이 땅에서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날이 더 많아지길 소망한다. 에노스의 때에 사람들이 주님의 이름을 부르며 예배하였다. His Name. 오직 거룩히 여김을 받으실 이름이 바로 하나님의 이름이다. 그 귀한 이름이 가치없다 여김받는 이 시대에 누가 다시한번 그분의 이름을 높이 부르겠는가? 우리가 예배하는 이 모임이 크신 그분의 이름을 경배하고 높이길 소망한다.
And to Seth, to him also there was born a son; and he called his name Enos: then began men to call upon the name of the LORD.
콘티
- 복의 근원 강림하사(Come Thou Fount, Come Thou King) D
- 영광 임하소서(Lord let Your glory fall) D
- 주님 내게 선하신 주(so good to me) D
- 춤추는 세대(Dancing Generation) D
- 주 사랑(it’s Your Love) B
- 내 입술로 하나님의 (후렴) B
- 거룩하신 하나님(All the Heavens) B
적용 – 주를 위한 이곳에
헌금 –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메시지 – 나현경 선교사(몽골)
사사기 15:9-20
하나님께선 삼손을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구분,구별된 자)으로 구분하여, 블레셋 손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부르셨다. 하나님은 각 사람마다 분명한 목적과 계획을 가지고 있고, 당연히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분명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다.
삼손은 물론 구별된 삶을 살았고 블레셋과 싸우긴 했지만 그 이후의 삼손의 삶을 보면 구별된 사람으로서 잘 살아내지 못한 것 같아보인다. 그럼에도 정말 놀라운 건 삼손의 그러한 삶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때마다 여호와의 영을 부어주셔서 삼손의 삶을 통해서 계속적으로 그 분의 목적을 이루고 계신 걸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셨으면 당연히 그 분의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다. 그 자리에 있는 그 시간을 통해서.
삼손에게 큰 위기가 닥쳐온다. 유다사람들이 삼손을 블레셋사람들에게 넘겨주려고 한다. 사실 삼손은 이스라엘을 블레셋으로부터 구하기 위해서 부르심을 받았고 삶이 완전하지 못해도 어쨌든 부르심을 따라 살려고 애쓰고 있는데 정작 이스라엘 사람들은 ‘왜 괜히 네가 나서가지고 우리를 어렵게 하느냐’며 삼손을 붙잡아서 블레셋에게 넘기려고 한다. 이건 굉장히 인생의 깊은 위기의 순간이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 자신이 그들을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데 그 사람들에게 오히려 붙잡힌바 되는. 근데 그 위기의 순간에 정말 놀라운 것을 보면 삼손이 붙잡혀 가고 그리고 나서 블레셋에 갔을 때 여호와의 영이 임한다.
우리 삶에 위기의 순간이 온다. 정말 힘든 순간인데 하나님은 단번에 그걸 바꾸신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셔서 삼손이 나귀 뼈를 들고 수많은 사람을 죽이게 된다.
15절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집어 들고 그것으로 천 명을 죽이고’
우리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때에 여호와의 영을 부어주시는데 그 때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떠한 것을 사용하신다. 각 사람의 은사일 수도 있고, 각 사람이 준비하고 열심히 노력했던 어떤 부분들일수도 있다. 그것을 하나님이 사용하신다. 하나님은 그걸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기적을 이루신다.
우리의 삶 안에 나귀 턱뼈와 같은 어떤 것을 준비하기를 소망한다. 그것이 다른 사람이 보기에는 별거 아닐 수도 있지만 근데 분명히 여호와의 영이 임하시면 그것을 통하여서 놀라운 승리로 하나님이 이끄실 것이다. 눈에 보면 아주 작은 것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이 쓰실 때에는 분명히 놀라운 승리를 이루게 될 것이다. 우리 각자의 삶 안에서 그런 것들을 찾고 그 승리를 이루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삼손이 그런 삶을 살고 그 승리를 이루는데 한 것이 있다. 여호와의 영이 임하셔서 삼손이 나귀의 턱뼈로 천명을 죽였는데 나귀의 턱뼈가 얼마나 자랑스럽겠는가? 그런데 17절에 그가 말을 마치고 한 말이 있다.
17절 ‘그가 말을 마치고 턱뼈를 자기 손에서 내던지고 그 곳을 라맛 레히라 이름하였더라’
삼손이 한 것은 턱뼈를 내던진 것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사용하실 수 있다. 승리의 원천은 (나귀의 턱뼈가 아닌) 하나님 그분이시다. 여호와의 영이 임했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우리의 많은 것들을 주님이 사용하실 수 있고 그건 때가되면 버리는 것이다.
안타까운 것은 하나님이 사용하셨던 그것이 우상이 되어버리는 경우다. 그것은 끔찍한 결과를 낳을 뿐이다. 우리는 우리가 가진 것으로 주님께 마음껏 드리고 주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승리할 수 있다. 승리에 도취되서 “이 턱뼈가 사람을 죽였다. 고이고이 모셔놓고 다음에 또 써야지?” 삼손은 그렇게 하지 않았다. 턱뼈를 버렸다. 그의 힘의 근원은 여호와의 영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사용하기 원하지 않으신다면 버려야 한다.
하나님의 승리를 경험한 삼손이 심히 목말라서 죽겠다고 말한다. 그 위기의 순간에 연약한 자를 사용하셔서 승리케 하셨는데 삼손의 태도가 어떤가? 목마르다고 한다. 저들의 손에 죽어야겠냐고 한다. 하나님이 우리를 통해서 어떤 놀라운 일을 하셔도 우리에게 제일 급한 것은 내가 목마른 것, 내가 갈급한 것, 내가 힘들어 죽겠는 것이다.
하나님이 삼손에게 정말 원하시는 것은 “너의 목마름을 내게 와서 해결하라. 너는 그렇게 연약한 자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해주기 원하신다. 놀라운 일을 행하신 이후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더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깊은 무언가를 해결해 주실 분은 하나님 한 분밖에 없기때문이다.
내가 열심히 주님을 위해 일해왔을지라도 ‘나는 지금 하나님 앞에 어떻게 서있는가?’ 우리 자신에게 한번 물어봐야 한다. 하나님의 관심은 우리 자신에게 있다!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그 많은 사역, 사람들, 건물이 아니라 ‘당신’에게 관심이 있다. 너의 목마름을 해갈시키길 원하고 내가 너와 함께하고 싶다고 말씀하신다. 우리 모두 하나님안에서 우리의 목마름을 해결하자! 우리가 그렇게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샘을 터뜨려주실것이다. 그 샘물이 천안땅안에, 캠퍼스안에, 열방안에 흘러가길 축복한다.